음양 팔괘장의 원류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팔괘장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팔괘장의 시조가 동해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는 음양팔괘장은 동해천 팔괘장과
비슷한 점도 있겠지만 그 근본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둔다.

음양 팔괘장은 명말 청초년간 사천 아미산과 청성산 일대의
벽운, 정운 양 도인이 전한 것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삼백여년이 되었다. 벽운, 정운 두 도인에게 음양팔괘장을
처음 배운 이는 문파의 시조이신 전호걸(도호 선자도인)이었다.
그후 전선(도호 붕선도인), 전붕비, 전리우(도호 동우도인),
전부청(도호 도청도인), 전해강, 전옥산(매 一代에 한사람만 열거)
등이 음양팔괘장을 전수 받았다.

그들중 어떤 이는 출가해서 도를 닦고, 어떤 이는 출가후
다시 환속하였다. 특정한 역사 배경 때문에 보수적이고 가족
에게만 전수되고, 외부에는 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음양팔괘장을
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줄고, 폐문지술이 되었고, 세상에 노출되지 않았다.


시조가 배운 음양팔괘장은 특정한 역사 배경을 갖고 있다.
明代에 전씨 문중에는 두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한분은 전유성이고, 한분은 전유물인데 친형제였고,
산둥성에 살다가 명대 후기에 하북성으로 이주하였다.
전씨 문중 제 4대 傳人중 전호걸(子는 상보, 본명은 여굉)이란
분이 어려서부터 무술을 좋아하고, 사서오경과 시문에
숙달하였으며, 병서를 좋아하고, 기문둔갑을 잘 보고
기마를 잘하였으며, 유람을 좋아하였다.

明末 전호걸이 1차로 유람을 갔을 때 사천(四川) 아미산, 청성산
일대에서 '장웅'이라는 협의지사를 만나 교분을 쌓았다.
그는 정직, 호방하고 악을 원수 같이 미워하였다.
두사람은 일견에 서로를 알아보고 결배하여 함께 협행을
가게 되었는데 전호걸이 사천을 지날 때 아녀자를 구하고
여러차례 의롭고, 용감한 일을 하는 것을 두 도사가 목격하고
그가 위험할 때 두 도사가 도(刀)를 뽑아 서로 돕게 되었다.

전호걸은 두 도사의 무공이 고강한 것을 보고 마음깊이
십분 흠모하였다. 후에 알았지만 두 도사는 벽운, 정운이었고,
친형제였으며, 성은 이(李)씨이고, 벽운의 이름은 가(嘉),
정운의 이름은 정(靖)이었다. 그 두사람은 원래 의사(義士)이고,
스승의 명으로 하산하여 악당을 제거하다가 관청에 쫓기게 되어
도포를 입고 도사가 되었다. 이때부터 사해를 유람하고
행적이 일정치 않고, 도처가 집이 되었으며
후에 심산에 은거하였다.


전호걸이 벽운, 정운을 처음 만났을 때 벽운, 정운의 성명을
수차례 물었으나 결코 실제 성명을 밝히지 않았다.
전호걸은 벽운, 정운의 신분을 후에 알았을 때 더욱 존경하게 되고,
두 분 도사를 스승으로 삼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장웅의 숙부의 도움으로 장웅과 함께 벽운, 정운의 문하가 되어
음양팔괘장을 수련하게 된다.

후에 장웅의 숙부가 돌아가시게 되자 숙모가 혼자 남게 되어
장웅이 돌아오기를 바래서, 장웅은 은사의 허락 하에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 숙모를 모시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그는 음양팔괘장을
미처 다 배우지 못하였고, 앞 투로의 팔괘장만 배우고,
뒷 투로의 팔괘장은 아직 배우지 못하였다.
후에 장웅은 그 아들 장계종에게 전하고, 장계종은 그 아들
장영에게 전하고, 장영은 또 그 아들 장홍균에 전해 내려왔다.


전호걸은 스승에게 10 여년을 배우고 음양팔괘장의 진전을 얻었다.
그 당시 明이 망하기 직전에 전호걸은 남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왕조가 바뀌는걸 보고 고향생각이 나서 은사에게 고별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전호걸이 다년간 자유자재적 생활을 하다가
집에 돌아온 후 어찌 청나라의 엄격한 통치를 견딜수 있었겠는가?

명조가 처음 망했을 때 일단의 애국지사들이 비분강개하여
청조 통치에 여러 방식으로 반항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절로 들어가 화상이나 도사가 되어 역량을 비축하고
명의 강산을 수복하고자 도모하였다.
이런 움직임속에 전호걸은 항상 나라를 걱정하여 아버지에게
심려를 끼치지 않으려 끝내 이별조차 고하지 않고 어디로
간지도 모른채 잠적하였다. 동시에 전호걸의 가족의 後代인
(당시로는 소년이었던) 전선 또한 돌연히 실종되었다.


수 십년후 홀연히 한 도사가 전씨 집안에 왔는데
자칭 전선이라 하는데 집안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자
그가 지난일을 애기하니 그제서야 전호걸이 나갈 때
그를 데리고 간 것을 알게 되었다. 전호걸과 전선은
도포를 입고 도사가 되어 반청복명 조직에 동참하였고,
전선은 음양팔괘장을 익힌후, 전호걸의 명으로 천리길을
달려서 전씨일가에게 음양팔괘장을 전수하러 왔던 것이다.

그후 전씨 가족은 비밀리에 음양팔괘장을 모두 배우고
반청복명의 조직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 조직의 활동영역은 경성 부근이고, 반청조직이라
청나라 조정에 발견되면 구족이 멸문되었다.
그리하여 가족 모두가 음양팔괘장을 전수 받는게 아니라
인재를 선발하여 명조에 충성하였다.
전선은 당시 반드시 지켜야 할 세가지 규칙을 내놓았는데,


1, 비밀준수와 청나라의 관리가 되는 것을 불허하며
2, 청나라 조정에 협력하는 것을 불허하며,
3, 만주인의 무술을 전수 받는 것을 불허한다.



전선은 또 규정하기를 음양팔괘장을 익힌 자손들은
다음 20 글자의 순서에 따라 배분을 받아야 한다.
붕,리,부,해,산,회,극,자,금,
천,만,리,초,강,악,운,후,무,건,곤

(벽운,정운,전호걸,전선은 배자를 받지 않고 이하 배자)

전선은 음양팔괘장을 전씨 가족 10 여명에게 전수
한 후에 곧 산으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음양팔괘장이 전씨 문중에 전해지게 된 것이다.


........................................................................................................................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141-5 음양팔괘문 태극권(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