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拳苑記事>

지난 백 여년간의 중국은 청조의 멸망과 좌우익의 충돌,
홍위병의 난 등으로 인해 중국 무술에 막심한 타격을 입혔다.
또한 중국 무술은 그 전수방식이 지극히 보수적이어서
시대를 이어오면서 외형은 살아있으나, 그 깊은 뜻은 점차 사라졌다.

양식태극권 역시 최근 백 여년 동안의 전파시기를 거치면서
중요가치가 감추어지고 소실되어 본래의 진면목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현재에 이르러 건신·양생의 수로 여겨지던
양식태극권이 그 내적 가치가 알려지면서 그 공효를 주목받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태극권은 그 맥을 개조이신 양가 태극권의 개조(창시자)이신
양노선 선생님 代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양건후公은 양노선 선생의 셋째 아들로 그의 형 양반후와 함께
태극권의 전륜함을 세상에 떨친 인물이었다. 이러한 명성으로 인해
청조 말 선종의 장자 푸룬 황태자는 양건후 선생의 입화경에 이른
절륜한 공부에 탄복하고 황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공경하여
스스로를 낮추어 제자의 예를 갖추고 배움을 청했다.

양건후 선생 또한 푸룬을 무척 아끼어 둘의 사이는 신분을 넘는 신뢰감을
형성하게 된다.그러나 푸룬은 사부와 대련할 수 없어 견자부중(見者府中)에
총관이면서 무술에 조예가 깊은 만주족 왕숭록을 시켜 자신의 실력을
가늠하곤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왕숭록 또한 태극권의 깊은 道를 알게 된다.

왕숭록은 당시 부패한 관리와는 달리 강직하고 청렴하여 일처리에 있어
부정함이 없었는데, 양건후 선생은 푸룬의 간절한 부탁과 스스로
왕숭록의 성품을 알아 그를 정식 배사 제자로 거두게 된다.
그 후 양건후 선생은 푸룬과 왕숭록 公에게 양가 태극권의 비전을
숨김없이 전하였는데, 두 사람은 태극권을 익히면서 그 깊음이
평범하지 않고, 타 무술과 비견되는 道를 보고 크게 감동하여
더욱 정진하게 되어 많은 공부를 이루게 된다.


왕숭록 공에게는 8살 난 왕영천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양건후 선생은 왕영천이 근골이 튼튼하고, 무술에 소질이 있어
제자로 삼으려 하였으나 왕숭록 부자의 배분 때문에 자신의 아들인
양징보로 하여금 태극권을 가르치게 한다. 그러나 자질을
남다르게 본 양건후 선생은 손자 대하듯 그에게 직접 노육로를
전수하며 아끼었다고 전해진다.

양건후 선생은 세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는 어려서 일찍 죽고,
둘째 양소후와 셋째 양징보에게 태극권을 가르쳤다. 특히 양소후는
성격이 냉랭하고 수법이 무정하여 그와 한번 대적한 사람이면
다시 대련하기를 꺼려하였다. 왕영천은 이미 7세때부터
만주 술교술(만주족 씨름)을 배워 낙법을 알아 양소후 선생과
곧잘 대련하곤 하였는데 양소후 선생은 기격 중심의 대타를 애호하여
결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왕영천 또한 포기할 줄
모르는 저돌적인 성격이어서 넘어져도 끝내 일어나
다시 대련을 하였는데, 이 형상이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듯한 모양새였다고 한다.

이러한 대련으로 왕영천은 많은 실전경험과 함께 양소후의
경법과 기술을 체득하게 된다. 특히 류수 방면에
많은 경험을 쌓아 실전력을 갖추게 되는데, 이는 전반기에
양건후 선생과 아버지인 왕숭록 공에게 內功과 권술의 권가를,
후반에는 양징보 선생의 架子와 노육로, 양소후 선생의 실전 기격을
익혀 양씨 내공을 더욱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게 성취한 왕영천 선생의 고심 막측한 공력은 후일
사회 과학원에서 예를 다하여 초대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사회과학원 철학 연구소장 第一문학연구소장 王平凡은
양씨 내공과 老六路(노육로)를 보존하기 위해 무술계 인사를
초청하고 기록하게 하여 태극권을 연구·보존하게 하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한 인간의 능력에 관해 관심을 기울여 연구, 기록
한다는 것은 그 전례가 드물만큼 특이한 일이다. 나 자신 또한
왕영천 선사님을 모시기 전에 20여 년을 넘게 태극권을 지도해 왔었는데
선사님을 뵙고 그 전의 공부가 얼마나 헛되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날의 공부가 헛되었다는 허탈감 보다는
새로움을 접하는 경이로움에 벅찬 시간들이었다.

귀한 인연이 닿아 스승님의 류수 내공과 강의를 직접 체험하면서
진정한 양식태극권을 보고, 열심히 양식태극권의 진실을 탐구하고 있으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음이 애석할 따름이다.



※왕영천 태사부님의 저작 「양식태극권 술진(1990년판)」과
위수인 사부님의 저작「양식태극권술 술진(1999년판)」은 서로 다른 내용입니다.
위수인 사부님이 스승을 존경하여 제목을 같이 하였기에 알려드립니다.

- 음양팔괘문 정민영




.....................................................................................................................
서울시 은평구 불광1동 264-25 음양팔괘문 태극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