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충족적 예언의 성공학
“너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성가신 녀석이기 때문에 함께 지내는 사람이 퍽 어려울 거야.”
이런 ‘저주의 말’을 어머니가 아들에게 했다면 쉽사리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아르투르 쇼펜하우어가 열일곱 살 때 어머니가 아들인 그에게 한 말이다. 아버지보다 스무 살 연하인 그의 어머니는 여류 작가로 활동하면서 아버지와 불화를 겪었고 남편이 죽자 자유연애를 하며 아들과 따로 살았다.
쇼펜하우어가 큰 상처를 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그가 여성 혐오론자가 된 것은 어린 시절 자신을 박대한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광수의 친일은 고아 콤플렉스 때문?
이런 분석이 이른바 지그문트 프로이트에서 시작된 정신분석학적 연구 방법이다. 정신분석학으로 인간의 삶을 접근하면 흥미로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프로이트와 쌍벽을 이룬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열등감과 불안감, 무력감은 삶의 목표를 세우게 하고 그 목표가 구체화되도록 도와준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열등감의 압박이 너무 심해지면 권력과 우월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과도해지고 마침내 병적인 상태로까지 고조된다고 아들러는 분석한다.
그 병적인 상태의 사례는 애국지사에서 친일의 앞잡이로 굴욕의 삶을 산 춘원 이광수에게서 엿볼 수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이규동의 ‘위대한 콤플렉스’에서 황진이·김소월·김삿갓 등 역사적 인물들의 콤플렉스를 분석한다. 필자는 대학 시절 이 글을 아주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다.
춘원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로 자랐다. 소설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결국 친일파로 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그런데 이광수의 친일 변절을 그의 ‘고아 콤플렉스’에서 기인한다고 이규동은 분석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이광수에게 도산 안창호가 상징적인 아버지 역할을 해 주었는데 그가 죽자 권위의 부재를 겪게 되고, 결국 일본 제국주의라는 새로운 권위에 의지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일제가 그에게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아버지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우연히도 1938년 3월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안창호가 서거하면서 이광수의 친일 변절은 시작된다. 즉, 이광수는 안창호가 서거한 바로 이듬해인 1939년 6월 김동인·박영희 등의 소위 ‘북지황군 위문’에 협력함으로써 친일의 제1보를 내디뎠다. 이어 친일 문학 단체인 조선문인협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그의 인생은 오욕으로 내달았다.
이광수와 달리 최근 인터넷을 달군 ‘손정의의 눈물’의 주인공 손정의는 그와 대조되는 성공 신화로 분석할 수 있다. 이른바 ‘자기 충족적 예언(로젠탈 효과, 피그말리온 효과)’이 그것이다. 그에 앞서 잠시 손정의의 삶을 들여다보자.
“번지가 없는 불법 판잣집에서 태어났다. 호적에 ‘무번지’라고 쓰여 있을 정도로 힘겹고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소년 시절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 할머니와 함께 방문한 선조의 나라 한국에서 할머니가 챙겨간 일본 헌옷을 받아든 어린이들이 너무 기뻐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런 순수한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의 도움’을 위해 공헌하겠다.”
최근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30돌을 맞은 주주총회에서 향후 30년의 비전을 밝히며 자신의 힘들었던 유년 시절과 가족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경영 철학을 담담하게 이야기해 화제가 됐다. 손정의는 주총 후반부에 돌연 자신의 성장 이력을 고백했다.
열네 살 나이에 낯선 일본 땅에 와 고생한 할머니를 회고하며 그의 뺨 위로는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어린 시절 지독히 가난했지만 할머니의 애정을 받으며 사업가로서의 꿈을 키웠습니다. 가족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고교 1학년 때 손정의는 4주간의 영어 연수를 위해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 갔다. 버클리는 미국에서도 자유분방함이 두드러진 ‘천재들의 소굴’로 통하는 곳이다. 미국인들은 흔히 버클리의 위대함을 괴짜들의 폭발하는 천재성에서 찾곤 한다.
영어 연수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미국은 외부 사람에게도 개방적이었고 일본처럼 폐쇄적이 아니었다. 나이든 사람들도 젊은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더욱이 버클리의 도서관은 문을 닫을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부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손정의는 미국의 인재들과 자웅을 겨뤄보고 싶었다. 결국 그는 고교를 중퇴하고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쿄대에 들어가 정치가가 되라는 게 아버지의 기대였지만 재일 한국인으로는 어렵습니다. 재일 한국인이 일본에서 1등이 될 수 있는 분야는 사업의 세계뿐이죠. 일본보다 앞선 미국에서 열심히 배워 미국 정상급의 실력을 기르고 싶었습니다.”
미국 유학의 꿈을 실행하려고 할 무렵 돌연 아버지가 쓰러졌다. 그러자 “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에서 너만 살 작정이냐”면서 가족들이 만류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입원 중인데 어쩌자고 너 혼자 집을 떠나려 하느냐며 미국행을 울면서 말렸다.
“병 때문에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두고 어째서 네 생각만 하는 거니. 가족이 이토록 고생하고 있는데 너만 혼자 미국으로 떠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이때 병석의 아버지가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가족들이 반대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제일 먼저 그의 미국 유학을 허락한 것은 뜻밖에도 아버지였다.
그가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에는 물론 손정의 자신의 노력과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힘’이 늘 작용했다. 그것은 바로 아들에게 늘 ‘너는 천재다’라고 말한 아버지 손삼헌의 팔불출 같은 아들 사랑이다.
칭찬과 격려가 긍정적 에너지 만들어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는 것을 보았지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켜보았더니 계속 그렇게 매달립디다. 아들은 한번 작심하면 어떤 일도 포기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도 자연스레 ‘너는 천재다’라고 했지요.”
타인이 칭찬하거나 관심을 쏟아주면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게 된다고 한다. 즉, 다른 사람이 나를 존중하고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변하려고 노력하고 결국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이를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한다.
타인의 기대나 관심에 따라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교육심리학에서는 ‘로젠탈효과’라고 한다. 흔히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만 어떤 우연한 근거에서 한 예언이 형성되면 그 예언이 바로 예언 자체의 실현을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가령 ‘나는 실패자야’라고 말하면 자기가 말한 그 정보에 따라 무의식적인 과정에 의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가짜 약이 효과를 발휘하는 ‘플라세보 효과’도 자기 충족적 예언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자기 충족적 예언은 상황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나 정의를 내려 다음 행동들이 처음의 잘못된 생각들을 현실화하게 한다. 따라서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항상 부정보다는 긍정의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버지의 신뢰를 듬뿍 받고 자란 손정의는 항상 자신감이 있었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중학생 시절 전학 간 학교에서 학생회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너는 천재다’라는 그 말 한마디가 아들에게는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마법의 샘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손정의는 모험적이고 개방적이며 창의적인 벤처 정신으로 무장한 비즈니스맨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통한다. 여기에 ‘너는 천재다’라는 아버지의 자기 충족적 예언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하면, 손정의는 도전 정신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너는 천재다’라고 말한 아버지의 자기 충족적 예언에 힘입어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결국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출처]
cafe.naver.com
작성자 이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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