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소리
취해 선가(仙家) 잠들었다 깨고서도 멍한데
흰 구름 골을 덮고 달도 잠겨 있는 때.
서둘러 숲 밖으로 혼자서 나오자니
돌 길 지팡이 소리 자던 새 놀라 깨네.
醉睡仙家覺後疑 白雲平壑月沈時
翛然獨出脩林外 石逕笻音宿鳥知
-박순(朴淳, 1523-1589), 〈방조운백(訪曹雲伯)〉
산 속에서 구름을 벗삼아 사는 벗
조준룡(趙駿龍)의 집을 찾았다.
반가운 해후 끝에 한잔 술을 거나하게 나누고
그만 곤히 잠이 들었다.
선듯해 잠을 깨니
여기가 어딘가 싶다.
둘러보면 흰 구름은 사방에서 몰려와
골짜기를 메워 평지로 만들었고,
달빛은 어느새 구름 속에 잠겼다.
달이 기운 것을 보면
새벽이 가까운 게다.
잠든 벗 깨우지 않고
그만 살그머니 길을 나선다.
어둠에 잠긴 긴 숲을 벗어나려고
자꾸 걸음을 재촉한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팡이를 두드려 앞 걸음을 확인한다.
어둠 속에서 땅땅 지팡이 소리만 울려 퍼진다.
숲 속 새가 그 소리에 놀라
잠이 깨는지 부스럭거린다.
출처 :정민 교수의 한국 한문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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