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 신흥사 능파각 기(頭流山 神興寺 凌波閣 記)에서....
서산대사
세상에서 바다 가운데의 삼산(三山)을 칭하는데
두류산(頭流山)은 그중의 하나에 속한다.
두류산은 우리 동국(東國) 호남(湖南)과 영남의 사이에 있다.
산에 절이 있는데 그 이름이 신흥사요,
절에는 깊은 골짜기(洞)가 있는데 그 이름이 화개동(花開洞)이다.
동천(洞天)이 협착하여 사람이 병 속을 출입하는 것 같다.
동으로 바라보면 하나의 푸른 골짜기가 있으니
바로 청학동(靑鶴洞)인데 푸른 학이 있고,
남으로 바라보면 강 위에 두어 봉우리가 있으니
바로 청학동인데 푸른 학이 날고 있고,
남으로 바라보면 강 위에 두어 봉우리가 있으니
바로 백운산인데 또 하나의 마을이 있는데 네댓 집이 산다.
꽃과 대나무가 산재해 있고
닭소리와 개소리가 들리며,
거곳에 사는 사람들은 의관이 순박하고
모발도 옛스러운데 생업은 밭갈고 땅을 파는 것만 알 뿐이요
만나고 찾아 오는 이는 노승(老僧)뿐이다.
깊은 골짜기에서 절문에 이르기까지
남으로 수십 보쯤 가면
동쪽과 서쪽의 두 시냇물이 합하여
하나의 시내가 되는데,
맑은 물이 도에 부딪쳐 꺽여 돌면서 소리를 내고
거센 물결이 한 번 뒤집히면
흰 물방울이 설화(雪花)처럼 무수히 튀어올라 참으로 기관을 이룬다.
시내의 양쪽에는 수천의 석우와 석양이 누워있는데,
이 물건은 처음에 반드시 하늘이 험한 것을 설치하여 영부(靈府)를 숨긴 것이리라.
겨울에 얼음이 얼고
여름에 비가 오면 사람들이 통행하지 못하여
몹시 불편하게 여겼다.
그런데 가정(嘉靖)신유년(1568년)여름에
산(山)의 덕사(德 士)옥륜(玉崙)이
도려(道侶)인 조연(祖演)에게 부탁하여
시냇가에 누워있는 석우(石牛)와 석양(石羊)을 채찍질하여
기둥을 만들어 한 층의 긴 다리를 가설하고
다리 위에 다섯 간의 고각을 지어 각각 단청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다리를 홍류교(紅流橋)라 이름하고
그 각을 능파각이라 이름하였다.
그 형상은 아래에는 물결에 누운 황룡이 있고
위에는 하늘에 날으는 붉은 봉이 있다.
형세는 단례의 원각과 같으나 장의의 귀교와는 월등하게 다르다.
산승(山僧)은 여기에 이르면
선정에 들기가 좋고
시인은 여기에 이르면
시를 짓기에 까다로우며,
도사가 여기에 이르면 환골(換骨)을 하지 않고도
바로 가벼운 바람을 타고 다닐 수 있다.
이에 옥륜, 조연 두 사(師)가 고요한 데에 마음을 맡기고
뜬구름에 몸을 의탁하여 지팡이를 짚고
때때로 나아가 그 사이에서 한가하게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그 사이에서 차를 마시기도 하며,
그 사이에 기대고 누워서 늙음이 이르는 것을 알지 못한다.
또 그 각에서는 몸이 백 척(尺)의 높이로 올라가매
별을 따는 듯한 멋이 있고
눈이 천 리에 트이매
하늘에 오르는 듯한 정취가 있으며,
외로운 따오기와 지는 저녁 놀은 등왕각(藤王閣)의 풍취가 있고
낙화유수(落花流水)는 도원(桃園)의 풍취가 있으며,
가을에 금수가 많은 것은 적벽(赤璧)의 풍취가 있고
귀한 손님을 맞이하고 보내는 데는 호계(虎溪)의 멋이 있다.
또 짊어진 사람, 이고 가는 사람, 밭갈이하는 사람,
낚시질하는 사람, 씻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
바람 쏘이는 사람, 풍월을 읊는 사람이 있고,
물고기가 노는 것을 보고 달을 구경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각에 올라서 그 즐거움을 누리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런즉 그 각이 사람의 흥취를 돕는 것이 얕지 아니하고,
또 풍우와 빙설을 당하여 건너는 자가 옷을 걷을 필요가 없으니
내를 건너게 해주는 공이 또한 크다.
그러므로 한 각(閣)이 이루어지매 여러 즐거움이 구비하였으니
어찌 반드시 현자라야 이것을즐길 수 있다고 할 것인가.
다만 한이 되는 것은
처음에 하늘이 영부를 숨겨 놓은 것을
지금 두 사(師)가 구름을 꾸짖고 헤쳐서
드디어 산, 사, 동, 간으로 하여금
마침내 인간 세상에 이름을 숨기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유마의 수단을 얻어서
이 각을 늘여서 천 간 만 간을 만들어 무진간(無盡間)의
대하에까지 이르러 널리 천하 사람을 덮어 줄까.
가정 (嘉靖)갑자년 봄에 기(記)함.
(청허당집을 읽고 있습니다.빼곡하게 세로로 내려 흐르는 귀한 글입니다.
이 글은 서산대사 청허당집에 나오는 몆십개의 글중 하나입니다.
두류산은 지리산의 옛 이름인데,
`지리산 중건기`에서는 지리산이란 지금의 산명도 사용하십니다.
청학동.... , 신비로운 마을,
푸른학이 노닌다는 이상향, 진정한 청학동은 어디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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