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장에서>
박이도
가난을 풀어가는 길은
너를 소시장에 내놓는 일이다
한숨으로 몇 밤을 지새고
작은 아들쯤 되는 너를 앞세우고
마을을 나선다
너는 큰자식의 학비로 팔려간다
왁자지껄 막걸리사발이 뒹군다
소시장 말뚝만 서있던 빈 터
찬 달빛이 무섭도록 시리다
헛기침 같은 울음으로
새 주인에 끌려가던 너의 모습
밤사이 이슬만 내렸다
우리집 헛간은 적막에 싸이고
아들에게 쓰는 편지글에
손이 떨린다
소시장에서 울어버린 뜨거움
아들아, 너는 귀담아 들어라
오늘 우리 집안의 아픔을
<공광규의 시 해설 >
3연으로 구성된 18행의 시다. 1연에서 주인공인 가난한 아버지는 도시에 유학한 아들의 학비를 걱정하면서 몇 밤을 한숨으로 지샌다. 결국 작은아들이나 다름없는 소를 팔기로 한다.
아버지는 소를 앞세우고 마을을 나서 시장으로 향한다. 소를 팔아야 큰자식의 학비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연은 소 시장 상황이다. 소를 팔고 나서 괴로운 아버지는 막걸리를 취하도록 마셨나보다. 소시장에는 왁자지껄한 막걸리 사발이 뒹군다.
그리고 소는 다른 사람이 끌고 갔고 빈 말뚝에는 달빛이 차갑게 내려 비친다. 아버지는 새 주인에게 끌려가면서 울던 소의 모습을 생각한다. 밤새 이슬만 내렸다. 3연은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모습이다. 소를 키우던 외양간은 텅 비었고, 아버지는 도시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를 쓰는 아버지의 손은 떨린다.
감정을 쏟아놓는 편지 때문에 아버지는 다시 소 시장에서 울었던 것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귀담아 들으라고 한다. 오늘 우리 집안의 아픔을. 이 아픔이란 다름 아닌 가난의 아픔일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도 고학이나 다름없던 나의 학비를 소를 팔아서 댄 적이 있다.
몇 마지기 논과 비탈밭뙈기만 가지고는 돈이 안되기 때문에 청양 우시장에 나가 중개노릇을 하기도 했었다. 우시장 선술집에서 뒹굴던 막걸리 잔술들. 돼지 비계를 넣은 두부김치찌개 안주. 한밤중에 술 취해 들어와 호주머니를 이곳 저곳을 뒤져 어머니 앞에 꼬깃꼬깃 꺼내놓던 종이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출처] [펌]박이도, <소시장에서>|작성자 소오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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