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강가에 혼자 낚시질
윤희경
눈이 쏟아지다가 그치면 비가 내리고 비가 오다가 그치면 다시 눈이 내리고
나중에는 심술 부리듯 진눈깨비가 오고...
어제 날씨는 하루 종일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은 마음이 헷갈리고 우중충해진다.
그래도 적설량이 많아 가뭄을 해소하고 건조주의보가 해제되어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비와 눈이 섞여 이렇게 많이 내리는 건 최근 들어 드문 일이다.
또 비가 그치고 눈이 펑펑 내린다. 비와 눈이 섞여 내리니 춥지 않아서 좋다.
눈 속을 뚫고 집을 나선다. 이내 이름 모를 짐승 발자국이 눈 위에 나란히 꾹꾹 박혀 있다.
눈 발자국은 언제 보아도 신비스럽고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발자국은 논배미를 넘어 들판을 지나 산자락 끝까지 이어지더니 없어졌다. 그리곤 아무도 없다.
온 세상이 눈 세상이다.
누구의 것인지 달랑 작대기를 고여 세운 목발 지게가
한 쪽 목줄이 부러진 채 하얀 산을 홀로 지키고 서 있다. 지게를 두고 어디에 갔을까.
'거기 누구 없소'하고 신호를 보내도 골바람에 눈발만 후루루 무너져 내릴 뿐 고적하기 짝이 없다.
다시 길로 나온다. 금방 누가 마실이라도 갔는지 남자 발자국이다.
또 발자국을 따라 가 본다.
발자국은 가물가물 보일 듯 말 듯하더니 염소네 염감 집에서 끝이 났다.
염소 영감네 아랫목에선 노인 네 분이 막국수 점심내기 민화토 한판을 두드리고 있다.
아는 척하다 막소주 한 잔 얻어 마시고 봉당을 나선다.
그리고 집안을 한 바퀴 휭 돌아 나오니 어느새
양철지붕 위엔 고드름이 한 줄로 나란히 매달려 있다.
하얀 고드름 위로 어릴 적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둘 흘러내려 추억을 되씹어내고 있다.
염소 영감 집에 염소가 없다면 말이 안 된다.
염소 장으로 머리를 넣어보니 새카만 수놈 염소가 제일 먼저 아는 척을 한다.
갈색 눈망울을 데룩데룩, 하얀 눈을 퍼 올리며 가까이 오지 말라 경고를 한다.
저도 사내라고 뿔을 땅바닥에다 비비적대며 암컷들을 보호해내는 심성이 기특하기만 하다.
오늘같이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에도 빙어 낚시꾼이 있을까.
있다면 빙어가 올라올까. 갑자기 강가가 그립다.
그 많던 빙태공들은 다 어디로 가고
노인 한 분이 누렁이 한 마릴 데리고 와 혼자 낚시질을 하고 있다.
한시 한 구절을 떠올리며 눈 덮인 강가를 바라보니 왜 눈물이 나려 하는지 모르겠다.
>산이란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千山鳥飛絶)
길이란 길에는 사람의 발자취 끊어졌는데(萬徑人縱滅)
작은 배 안에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늙은이(孤舟絲笠翁)
눈 내리는 강에 홀로 낚시질.(獨釣寒江雪)
유종원 '강설(江雪)' 전문
강가를 헤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 날엔 그럴 듯한 시를 읽어야 고독이 덜하다.
저녁 눈 오는 마을에 들어서 보았느냐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마을이 조용히 그 눈을 다 맞는
눈 오는 마을을 보았느냐
논과 밭과 이 세상에 난 길이란 길들이
마을에 들어서며 조용히 끝나고
내가 걸어온 길도
뒤돌아볼 것 없다 하얗게 눕는다.
이제 아무것도 더는 소용없다 돌아설 수 없는 삶이
길 없이 내 앞에 가만히 놓인다.
저녁 하늘에 가득 오는 눈이여
가만히 눈발을 헤치고 들여다보면
이 세상엔 보이지 않은 것 하나 없다
다만
하늘에서 살다가 이 세상에 온 눈들이 두 눈을 감으며
조심조심 하얀 발을 이 세상 어두운 지붕 위에
내릴 뿐이다.
김용택 '눈 오는 마을' 전문
어찌 이리도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냈을까.
눈 오는 마을에서 눈 속을 헤매다 보니 고독한 마음에 바람이 인다. 또 눈이 내린다. 강마을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