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말리는 신부님 2
처음 오토바이 타고 ‘뺑뺑이’
“이거 어떻게 하면 멈춰?”
2009/08/27
시간이 흘러 신부님의 친구인 외국인 사제의 예언에 따르면 마음보다는 몸이 고생할 거라던 부제도 신부님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파악하게 됐다. 한여름 땡볕에 기차역에서 성당까지 후진으로 차를 몰아오는 신부님의 고집을 다시 경험할 일도 생겨나지 않았다. 하긴 그때 신부님도 목을 뒤로 돌린 채 이십여 분 동안 운전을 하고 나서는 목에 얼음찜질을 했을 정도로 고생을 했으니 시행착오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기어 수리가 끝난 차는 성당 앞마당에 늠름하게 서 있었다. 신부님이 그 차를 언제든 필요하면 쓰라고 했지만 부제는 그 차만 보면 저절로 걸음이 빨라지면서 생땀이 줄줄 흐르는 증상이 생겨나 있었다. 신자를 찾아가거나 일이 있어 어디 멀리 갈 때에 성당에 멀쩡한 지프를 두고 택시를 탄다는 것도 못할 일이었고 그렇다고 걸어가는 건 무리였다. 뭔가 탈것이 필요하긴 했다. 부제가 성당 살림을 잘 아는 신도회 회장에게 이야기하고 마침 신도 중에 오토바이 가게를 하는 사람이 있었던 까닭에 성당 예산으로 부제가 타고 다닐 오토바이를 구입하게 됐다.
어느 토요일 오후 오토바이가 당도했다. 소싯적에 오토바이를 몰아 본 경험이 있던 부제는 배달용 소형 오토바이가 아닌 제대로 된 오토바이를 주문했다. 그렇다고 경찰 사이드카 같은 대형 오토바이는 아니고 배기량 125cc의 국산 오토바이였다. 오토바이가 배달되던 날, 성당에는 우리들의 신부님도 함께 있었다.
“신부님, 오토바이 타 보셨어요?”
부제가 묻자 신부님은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탈것이라면 경운기부터 세단, 지프, 트럭, 포크레인, 보트 다 몰아 봤지만 오토바이만은 못 타 봤네.”
새 오토바이는 반짝반짝 빛이 났고 시동을 걸자 엔진에서 “캬등캬등캬등” 하는 선명한 소리가 울렸다. 부제는 그 오토바이가 귀여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럼 제가 타는 거 한 번 보실래요?”
“그럴까?”
두 사람은 성당 앞 큰길로 나섰다. 날이 무척 더웠지만 부제는 수단을 입고 있었으며 신부님은 간편한 셔츠 차림이었다.
“신부님, 날이 덥기도 하고 새 오토바이 들어온 거 축하도 할 겸 아이스크림 하나 드실래요? 제가 저기 길 건너편 가게 가서 사오겠습니다.”
“음, 그래. 그거 좋지.”
오토바이와 신부님은 남고 부제는 길을 건너서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부제는 그동안 알게 된 신부님의 취향을 감안해 콘 형태의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부제의 눈에는 신부님도, 오토바이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쿠, 신부님!”
부제는 허둥지둥 길을 건너갔다. 길바닥에는 오토바이 자국조차 없었다. 사방을 살피던 중에 바로 옆 초등학교의 담장 너머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캬드드등 캬우웅!”
부제는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고 뛰기 시작했다. 횃불을 양손에 든 성화 봉송주자처럼. 삼십여 초 만에 학교 마당에 들어선 부제의 눈에 운동장을 빠르게 돌고 있는 오토바이가 보였다. 그건 부제가 한 번도 타 보지 못한 바로 그 오토바이였고 타고 있는 사람 또한 보나마나 새것, 안 해 본 일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호기심의 대왕, 우리들의 신부님이었다.
“신부님!”
부제가 목이 메어 외쳐 부르자 신부님은 겸연쩍은 듯 웃으면서 부제에게 다가와 뭐라고 외쳤다. 오토바이 엔진음과 거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요?”
오토바이는 다시 멀어져 갔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온 오토바이 위에서 신부님이 말했다.
“미안하다고! 근데, 김비오!”
그러면서 오토바이는 멀어져 갔다. 또 한 바퀴를 돌고 온 오토바이 위에서 신부님이 물었다.
“이거 어떻게 하면 멈춰?”
오토바이는 다시 멀어져 갔다.
“브레이크를 잡으세요!”
오토바이가 가까이 왔을 때 부제가 외쳤다.
“브레이크가 어디에 있는데?”
오토바이는 또 멀어져 가서 한 바퀴를 돌고 돌아왔다.
“오른손으로요, 거기 튀어나온 거 있잖아요! 그거 꽉 잡아 당기…”
오토바이가 다시 멀어져 가는 바람에 부제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스크림이 줄줄 녹고 있었다.
“이렇게? 안 되는데?”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가까이 온 신부님이 다시 물었고 부제는 최대한 빠르게 오토바이를 멈추는 법을 설명했다. 그렇게 다섯 바퀴를 더 돈 뒤에야 오토바이는 멈췄다. 축구를 하다 말고 두 사람을 구경하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다 녹았구나.”
오토바이에서 내린 신부님이 겸연쩍게 웃으며 부제의 두 손을 흠뻑 적시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부제는 껍질만 남은 아이스크림을 든 채 천만 가지 감정을 담아 신부님을 불렀다.
“아~ 정말, 신부님!”
“응? 나?”
“그래요! 여기 신부님 말고 신부님 같은 신부님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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